2004년에 그룹 더 넛츠가 부른 "사랑의 바보"라는 노래에는 어떤 여자를 무한정 기다리는 바보같은 남자가 등장한다. 그 여자에게 좋은 남자가 나타날 때까지 그 여자 곁에서 그 여자를 잠시동안 지켜주겠다는 남자. 그 기다림이 자발적이며 본인이 좋아서 하는 것이니 모르는 사람들은 제발 그녀를 욕하지 말아달라는 게 가사의 골자다. 남자가 볼 때 정말 바보같은 남자다. 대개 이런 노래의 가수는 남자인 경우가 많고, 여자들의 환상을 자극해서인지 인기가 좋은 편이다. 유사한 노래로 1997년 가수 김경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노래도 있다.

이 노래들은 모두 파생상품인 옵션과 관련이 있다. 옵션은 어떤 자산(기초자산이라 한다)을 특정 가격(행사가격이라 한다)에 만기(미래의 특정시점)에 사거나 팔 권리를 증권으로 만든 상품이다. 이때, 살 수 있는 권리를 콜옵션(call option)이라 하고 팔 수 있는 권리를 풋옵션(put option)이라 한다. 옵션의 보유자는 만기에 옵션을 행사(옵션에 의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옵션을 행사하게 되고(콜옵션의 경우 만기에 기초자산의 시장가격보다 행사가격이 더 낮아서 행사가격으로 기초자산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행사, 풋옵션의 경우 만기에 기초자산의 시장가격보다 행사가격이 더 높아서 행사가격으로 기초자산을 파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행사), 그렇지 않을 경우 그냥 옵션을 포기하면 된다. 반면, 옵션의 발행자는 옵션 보유자가 권리를 행사할 때 이에 응해줄 의무를 갖는다. 이러한 권리에 대한 댓가로 옵션의 보유자는 옵션의 발행자에게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게 되는데, 이를 옵션 프리미엄(option premium) 혹은 옵션 가격(option price)이라 한다.

사랑의 바보에 등장하는 여자는 풋옵션의 보유자라 할 수 있다. 이때, 기초자산은 여자 본인이고, 이 바보랑 결혼함으로써 바보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는 효익이 바로 이 풋옵션의 행사가격 즉, 이 여자의 결혼 몸값(사람의 가치를 이렇게 값으로 매기자니 좀 천박해보이긴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이렇다.)이라 할 수 있다. 만기는 이 여자가 스스로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미래의 특정시점이다. 이때, 만기시점의 기초자산에 대한 시장가격은 이 여자가 결혼할 예정인 시점 즈음에 이 여자와 결혼하고자 나타난 다른 남자가 결혼을 통해 제공해줄 수 있는 효익(즉, 그 남자가 지불할 수 있는 이 여자에 대한 몸값)이라 할 수 있다.

즉, 이 여자는 만기에 본인의 몸값이 이 바보가 제시한 몸값, 즉 행사가격보다 더 높으면(즉, 더 높은 몸값을 제시할 수 있는 남자가 나타나면), 그 남자랑 결혼하되, 이 풋옵션을 포기하면 되고(바보에게 본인을 매도할 권리를 포기), 만약 그런 남자가 없으면(남자가 아예 없거나 혹은 남자들이 제시하는 몸값이 이 바보가 제시한 몸값, 즉 행사가격보다 낮으면) 이 풋옵션을 행사해서 이 바보에게 시집(바보에게 행사가격으로 본인을 매도)을 가면 된다고 할 수 있다. 여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보험을 가진 셈이다. 더 나은 남자가 나타나면 그 남자한테 시집을 가면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최소한 이 바보에게 시집을 갈 수는 있으니까.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니 노래가 인기를 끌었겠지.

참고로, 이와 같이 기초자산(여자 본인)과 풋옵션을 동시에 보유한 전략을 프로텍티브 풋(protective put) 전략이라 하는데, 이 전략은 기초자산을 보유한 사람이 미래의 가격변동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취하는 전략이다. 미래에 어떤 몸값에 시집을 가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위험)에 직면해서, 이러한 풋옵션을 보유함으로써 최소한 바보가 제시한 행사가격에 시집갈 수 있도록 해서 그 불확실성(위험)을 제거하는 전략인 것이다. 게다가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나면(더 높은 몸값을 제공할 수 있는 남자가 나타나면), 그 남자에게 시집갈 가능성은 남겨둔 채로 말이다.

물론, 이 풋옵션의 발행은 바보가 한 것이고, 이 바보는 여자가 풋옵션을 행사할 경우 이에 응해서 행사가격을 지불하고 이 여자를 매수(본인이 제공할 수 있는 효익을 제공하면서 이 여자와 결혼)해 줄 의무를 갖고 있다 하겠다. 이때, 이 바보가 그 댓가로 제공받는 풋옵션 프리미엄은 이 여자랑 같이 지내면서(일종의 썸 같은 관계다) 밥도 같이 먹고 영화도 같이 보는 등 이 여자와의 데이트를 통해 얻는 심리적 행복감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만기에 이 여자의 시장가격이 풋옵션의 행사가격보다 낮아지면(즉, 만기에 다른 남자가 제공할 수 있는 효익이 바보가 제공할 수 있는 효익보다 낮으면), 이 여자는 시장가격보다 비싼 행사가격에 본인을 매도하기 위해 이 풋옵션을 행사할 것이다. 즉, 바보에게 시집을 가게 될 것이다. 바보 입장에서는 사랑을 이루었으니 매우 행복한 일이다.

만약 만기에 이 여자의 시장가격이 풋옵션의 행사가격보다 높아지면(즉, 만기에 다른 남자가 제공할 수 있는 효익이 바보가 제공할 수 있는 효익보다 높으면), 이 여자는 행사가격보다 비싼 시장가격에 본인을 매도하기 위해 이 풋옵션을 포기할 것이다. 즉, 더 좋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될 것이다. 바보 입장에서는, 이득을 본 것이다! 옵션 보유자가 옵션을 포기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옵션 프리미엄을 번 셈이기 때문이다! 초기투자금 없이 수익만 있는, 투기로 보면 대박상황인 것이다! 그렇다! 남녀관계에서는 든든한 보험을 지닌 풋옵션 보유자 뿐만 아니라 풋옵션 발행자 또한 항상 행복한 것이다!

물론, 이건 긍정적인 측면에서만 본 것이고, 매우 비관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황을 나쁘게도 볼 수 있다. 즉, 만기에 이 여자가 더 좋은 남자를 선택해서 시집을 가버리면, 이 바보는 사랑을 이루지 못해서 슬플 것이고, 그런 남자가 없어서 이 바보에게 시집을 오게 되면, 바보 입장에서는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의 여자를 비싼 행사가격으로 매수하게 되는 셈이 되어 그 또한 슬플 수 있는 것이다. 행사되지 않은 풋옵션의 발행자가 부를 법한 노래는 여기를 클릭...(가사는 자막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이 바보는 투기꾼이다. 일반적으로 옵션의 발행자는 투기꾼이다. 옵션의 보유자가 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옵션 발행자는 초기투자금 없이 옵션 프리미엄을 벌게 되어 대박이 되지만, 옵션이 행사되면 불리한 조건으로 손해를 보는 거래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잘 되면 대박, 못 되면 쪽박인 큰 위험을 떠안는 댓가로 대박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옵션의 발행자가 떠안는 이 위험은 옵션의 보유자로부터 전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바보는 여자가 보유한 위험(얼마의 몸값으로 시집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확실성)을 대신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런 바보가 여러명이어서 여자가 다량의 풋옵션을 보유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현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나도 20년전 대학 다닐 때 본 적이 있다. 그 여학생이 사는 하숙집 일대가 전부 풋옵션 발행자로 드글거리는, 아니, 그 여학생이 속한 학과의 남학생들 전체가 풋옵션 발행자가 되는 그런 상황 말이다. 이런 상황을 전문용어로 "어장관리"라고 부른다. 이때, 풋옵션을 발행한 각각의 발행자를 "물고기"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어장관리자들은 도대체 어떤 마성을 지녔길래 남들은 하나도 보유하기 힘든 풋옵션을 그렇게도 많이 보유할 수 있는 것일까? 부러울 따름이다. 어장의 물고기가 부를만한 노래는 참 많지만 대표적으로 이런 노래가 있다. 어장관리자의 불행을 통쾌하게(?) 혹은 안타깝게 읽어볼 물고기들에게는 부장판사 출신 도진기 작가가 2016년에 쓴 추리소설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를 권하는 바이다. KBS에서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된 적도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여러분(미혼인 경우 혹은 미혼이었던 경우)풋옵션의 보유자입니까? 아니면 발행자입니까? 혹은 옵션은 위험하니 얼씬도 하지 않는 타입입니까? 설마 어장관리자입니까?


참고문헌

조승모(2017), 선물과 옵션에 관한 작은 책, 주식회사 부크크.


※ 이 글은 "조승모(2017), 선물과 옵션에 관한 작은 책, 주식회사 부크크"의 제3장 1절과 4절의 내용 및 제3장 7절 문제10의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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