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학교는 학사경고자의 발생을 막으려고 학기 1/4시점과 1/2시점에 학사경고위험군(출석이나 의무적인 검사에 대한 미참여 등을 기준으로 선정)을 만들어서 해당학생들의 명단을 지도교수에게 보내준다. 잘 지도해서 학사경고 좀 막으라고. 물론 방학때는 실제로 학사경고를 맞은 학생들에 대한 지도도 해야 한다.

5월초에 나에게도 19명의 학사경고위험군 2차 명단이 관련 공문과 함께 메일로 날아왔다. 일차적으로 해당 학생들에게 비교적 장문의 문자를 보내서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언제까지 어떻게 결격사항을 메꾸라고 알려주었다. 만약 기한내에 결격사항이 해소되지 않으면 나랑 직접 상담을 해야한다고도 알려주었다. 직접 나한테 전화해서 관련사항을 문의한 학생이 1명 있었고 문자로 문의한 학생이 2명 있었다.

설정한 기한이 지나서 보니 19명중 17명은 본인들의 결격사항을 모두 해소했고 2명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명은 지난번 1차때에도 연락이 두절되었었던 학생인데 이번에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머지 1명은 상담일정을 잡으려고 전화로 연락을 했는데 다행히 연락이 닿았다.

전화를 걸어서 지도교수임(소속, 성명, 지도교수)을 밝혔는데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 야간 1학년 학생이다.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워낙에 인사를 하는 학생이 드물기 때문에 그냥 통화를 계속했다.

문자를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문자를 받았단다. 그럼 왜 문자를 통해서 조치를 취하라고 한 걸 안했냐고 물으니 언제까지냐고 되묻는다. 기한이 지났다고 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지났냐고 반문하면서 웃는다.

그래서 문자를 통해 알려준대로 상담을 해야 한다고 오늘 수업이 있냐고, 수업 전에 잠깐 오라고 했더니 수업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상담용 시스템 화면에 나타난 이 학생의 시간표상에는 수업이 저녁에 두개나 있다. 슬슬 열이 올라왔지만 혹시나 해서 다시 물었다. 시간표상으로는 저녁에 수업이 있는 걸로 되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공식 시간표는 그런데 해당 교수님들이 개인사정으로 시간표를 조금 변경하셨단다.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지만 당장 확인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언제 올 수 있냐고 물었더니 언제든 올 수 있단다. 그래서 원래 수업이 있던 오늘 저녁 9시는 어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그때는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안된단다. 어이가 없다. 언제든 된다면서 아르바이트 때문에 안된다니? 그것도 본인의 학사경고위기에 관한 상담인데. 중고등학교에서도 이런 정도의 일로 학부모님을 학교로 오시라 하면 휴가를 내서라도 오실텐데, 1학년 학생이 본인 학사경고위기 문제로 지도교수가 상담하러 오라는데 아르바이트 때문에 못 온단다.

폭발할 것 같았지만 참았다. 존대말을 계속 해줬어야 했는데 이 친구가 이렇게 나오니 슬슬 반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일은 안되냐고 이 친구가 묻는다. 그래서 내일은 내가 강의가 늦게 끝나서 밤 10시에라도 하겠냐니까 또 아르바이트란다. 그럼 저녁 7시는 어떠냐니까 학원 가야 한단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그럼 지금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지금 학교 오는데 얼마나 걸리냐고 지금 통화를 이렇게 할 수 있는 거 보니 올 수 있지 않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면서 지금은 곤란하단다. 그러면서 사실 자기가 요즘 학교를 잘 안간단다. 이번에는 아르바이트나 학원 얘기도 없다. 그냥 오기 싫은 거다.

그래도 참고 다시 물었다. 영남대 학생이 아닌데 내가 전화 잘못 건거냐고.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학생 맞단다. 그냥 학교를 잘 안간단다. 상담 시스템상의 주소를 보면 학교 앞 원룸이다. 그러면서 도대체 무슨 상담이냐고 묻는다. 문자로 안내를 했고 본인도 문자를 봐서 알텐데 말이다. 이제 핑계도 안대고 그냥 오기 싫다는 얘기임이 분명하다.

드디어 나는 폭발했다. 그렇다고 쌍욕을 하거나 험한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언성이 높아졌을 뿐. 정확히 "아, 그냥 좀 와~~!!"라고 큰 목소리로 말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왜 이렇게 불친절하냔다. 그러면서 나보고 예의를 지키란다. 화가 나서, 학생은 예의를 지켰냐고, 지도교수라고 밝힌 시점에서부터 지금까지 인사 한마디 했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는 대답도 없이 내 더러워서 가준다는 듯 "갈게요! 어디로 가면 되요? 예?" 이런다. 정말 상종 못할 인간이라 느껴져서 전화를 끊었다.

무려 8통이나 계속 나한테 전화가 온다. 나는 계속 받지 않고 끊었다. 그러다가 끝이 안 날 것 같아서 전화를 받았다. 나는 다시 존댓말로 응대했다. 그랬더니 막 화를 내면서 "당신" 왜 이렇게 예의가 없냔다. 자기는 예의를 다 지켰는데 "당신"은 왜 안지키냔다. "당신"이라고 했냐니까 그렇단다. 왜 반말하고 왜 불친절하게 하냔다. 아까는 막 험하게 하더니 왜 또 존대말이냔다. "아까처럼 해보시지!" 막 이런다. 어이가 없다. 아니, 지도교수가 학생한테 반말을 할 수도 있지 그게 문제가 되냐니까 지도교수면 학생한테 막해도 되냔다. 지도교수에게 인사도 안한 학생이 지금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냐니까 대답도 않고 도대체 무슨 상담이냔다. 공문 얘기부터 자세하게 다시 설명해줬다. 그랬더니 학사경고 맞을테니 상담 안하겠단다.

지금 이렇게 불손하게 구는 거 징계해도 되냐니까 막 화내면서 마음대로 하란다. 뭐 이런 걸로 징계냐는 투다. 그리고 다시 학사경고 맞고 상담 안한단다.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혀 있는데 이 친구가 전화를 끊는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멍하니 있다가 다른 교수님들께 상담을 청했더니 다들 정신 나간 놈이라고 징계가 마땅하다신다. 그리고 이렇게 막가는 거 보니 재수해서 다른 학교로 가려거나 다른 이유로 학교를 자퇴할 생각인 것 같다신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 있냐신다.

그래서 나는 일단 징계를 진행하진 않기로 했다. 어차피 자퇴해서 내 품을 떠날 놈이라면 굳이 징계가 의미가 없을테니까. 그리고 혹시나 용서를 구하러 오면 용서해주고 잘 타일러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니까.

사건이 발생한지 사나흘이 지났지만 이 학생으로부터 메일도 문자도 전화도 없다. 나도 모르게 계속 스마트폰만 확인하고 있다. 혹시나 어떤 식으로든 용서를 빌기 위한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가슴이 답답하고 잠이 안온다. 일이 손에 잘 안잡힌다.

정말 이런 학생은 처음 본다. 요즘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1:1로 얘기할 때 다들 극존대하시나? 학생이 선생님께 "당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시절인가? 학생이 선생님께 예의가 없다고 훈계를 하기도 하는 시대인가? 아니, 대학생이 되면 인생을 몇십년 이상 살아본 어르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고등학교 졸업한지 6개월도 안된 학생이 어떻게 교수한테 저럴 수가 있는 것일까?

혹시 내가 문제 있는 걸까? 학생들을 교수님들처럼 대해야 하는 걸까? 극존칭을 쓰면서 전화상담원처럼 응대해야 하는 걸까? 화가 나도 삭히고 아무리 부당한 학생의 요구에도 웃으면서 응해줘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못해서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학생들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젠 정말 모르겠다. 스승의 날을 코앞에 두고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 정말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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