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서의 교육적 효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수업중 강의교재를 스크린에 띄워 놓고 판서를 해가면서 강의를 한다. 단순 암기형 강의라기 보다는 논리와 증명이 강조되는 강의이다보니 강의교재만 보면서 설명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부분 주요 내용을 판서를 통해 수업을 하는 편이다. 해당 내용이 교재에 그대로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 그놈의 COVID-19 때문에 온라인 강의로 학기를 진행하다보니 이런 강의방식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온라인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판서의 효과를 최대한 보존하고자 처음에는 디지타이저 등을 이용해서 스크린상에 판서를 하는 형태로 온라인 강의영상을 만들까 했었다. 하지만 시험삼아 그렇게 만들어봤더니 너무 악필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진짜 칠판에 판서를 하면 봐줄만하한데 디지타이저로 판서를 하면 내가 봐도 가독성이 많이 떨어진다. 직접 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하... 마음에 안든다. 글씨가 개떡이다. 선도 삐뚤빼뚤 잘 안 그려진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도 해봤지만 역시 마음에 안든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지금 하고 있는 형태의 강의이다. 글씨는 타이핑 글씨체를 이용하되 마치 판서를 하듯이 내용이 순차적으로 화면에 나타나도록 하는 방식이다. 아래 영상과 같은 방식이다. 보기에 따라 별 것 아닌 걸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거 만드는 게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밤을 새면서 만든다. 정말 죽을 맛이다. 

이렇게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강의중에 수업교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이 교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온라인 강의영상에 있는 내용은 거의 대부분 우리 교재에 그대로 있다. 그러니 굳이 온라인 강의내용 전부를 노트에 옮겨 적을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 교재에는 없는 내용이 온라인 강의영상에 등장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만 우리 교재 여백에 간단히 적어두면 된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온라인 강의영상을 복습에 활용하려면 엄청나게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험을 앞두고 하는 복습은 교재를 보면서 하는 게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시험이 오픈북 시험으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차피 필요한 내용을 교재에 다 적어서 시험장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오픈북 시험에서는 열람가능한 자료로 우리 주교재만 허용되고, 자료를 추가해서 교재를 재제본(불법복제 포함)하거나 포스트잇 등을 붙여 교재에 자료를 추가하는 등의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교재 여백에 뭔가 잔뜩 적어서 시험장에 가지고 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교재를 함께 보는 게 좋다. 교재와 함께 영상을 보다가 교재에 없는 부분이 등장하면 필기하는 형태로 공부를 해야 복습하기도 편하고 시험 보기도 편하다.

요약하자면,

  1. 온라인 강의내용은 대부분 교재에 잘 적혀 있으므로, 영상내용을 다시 필기할 필요는 없다.
  2. 온라인 강의영상에는 등장하고 교재에는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 일부 있는데, 이것들은 교재 여백에 필기해서 채워넣는 게 좋다. 
  3. 따라서, 교재를 보면서 강의영상을 시청하는 걸 권한다.
  4. 그래야 복습과 오픈북 시험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온라인 강의 진도를 조회해보면 아직 1강도 제대로 안 들은 학생들이 꽤 보인다. 그래서 갑자기 이런 부분까지 걱정이 되어서 몇자 적어봤다. 학생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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