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에서 본 일이다.

늙은 취준생 하나가 인사팀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서류 한 장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서류로 입사 못하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인사팀 직원의 입을 쳐다본다. 인사팀 직원은 취준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서류를 형광등에 비춰 보고
"좋소."
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서류를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총무팀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서류를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대기업 합격증이오니까?" 하고 묻는다.
총무팀 직원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서류 어디서 훔쳤어?" 취준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중요한 서류를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취준생은 손을 내밀었다. 총무팀 직원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서류가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서류를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서류를 두 손으로 붙잡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을 거저 합격시켜 줍니까? 전화 한 통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서류 통과되는 회사도 백에 하나 쉽지 않습니다. 나는 겨우 겨우 쌓은 스펙으로 중소기업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쌓은 경력 3년으로 조금 더 큰 회사로 옮겼습니다. 이러기를 세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대기업 합격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합격증을 얻느라고 10년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옮겨다녔단 말이오? 그 합격증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합격증 한 장이 갖고 싶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