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군대를 제대한 지 얼마 안 돼서 전공과목을 집중수강할 때다. 취업 준비하는 과정에, 4학년 때 학점부담을 덜기 위해 2~3학년 때 전공과목을 많이 들어야 했다. 전공과목 시간표를 짜다 보니 마침 원하는 시간표에 딱 맞는 전공과목을 강의하는 노인이 있었다. 전공학점 좀 쉽게 따 가려고 잘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쉬운 내용을 굉장히 어렵게 가르치는 것 같았다.
"좀 쉽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전공과목 하나 가지고 거저 먹겠소? 어렵거든 다른 과목 들으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학점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가르쳐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쉽게 가르치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가르쳐보고 저리 가르쳐보고 어려워지기 시작하더니, 마냥 어렵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되겠는데, 자꾸만 더 깊이 가르치고 있었다.
인제 다 알겠으니 그냥 넘어가자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중간고사를 봐야 할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깊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하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배우는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가르친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시험이 코앞이라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교수한테 재이수 하시우. 난 학점 못주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듣고 있다가 그냥 포기할 수도 없고, 시험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가르쳐 보시오."
"글쎄, 불평을 하면 점점 어려워지고 늦어진다니까.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지, 하다가 대충 넘어가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가르치던 것을 숫제 수식(數式)으로 바꾸더니 태연스럽게 외계어를 하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수식들을 이리저리 변형해보더니 다 됐다고 수업을 마쳐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수업이다.
시험을 망치고 재이수를 기약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강의를 해 가지고 폐강이 안 될 턱이 없다. 학생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고생만 되게 시킨다. 강의평가(講義評價)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강의실 창밖 하늘을 바라보고 섰다. 그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더니 회사는 전공지식이 출중하다고 야단이다. 다른 학교 출신보다 참 깊이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학교 출신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회사의 설명을 들어 보니, 이론에만 너무 매몰되어 있으면 실무감각이 떨어지고 같은 업무라도 오래 걸리며, 직관에만 너무 매몰되어 있으면 실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확장이 잘 안 된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인재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엣날부터 내려오는 서적(書籍)은 혹 페이지가 떨어지면 실로 꿰매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서적은 페이지가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제본을 할 때, 몇 장씩 실로 꿰어 묶음을 만든 뒤 이 묶음을 다시 실로 엮어 책을 만든다. 이렇게 하기를 수십 번 하고 나서 비로소 두꺼운 표지를 붙인다. 이것을 양장제본이라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양장제본한 책이 많을 것 같지 않다.
중고서적(中古書籍)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헌책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한 번도 안 읽은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한 번도 안 읽은 책이란 새로 사서 첫 페이지도 넘겨본 흔적이 없는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한 번을 읽었는지 열 번을 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정직하게 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파는 그 순간만은 오직 정직하게 물건을 판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헌책을 돌려보았다.
이 과목도 그런 심정에서 가르쳤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가르쳐서 무슨 강의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강의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해 스승의 날에 모교를 방문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가르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가르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강의실 창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강의를 하다가 유연히 하늘 위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딸내미가 동영상 강의를 보고 있었다. 전에 전공과목들을 캠퍼스에서 들었던 생각이 난다. 대학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스승에게 인사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니 교학상장(敎學相長)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30년 전 강의 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르치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SKY 나와도 30전 30패 (0) | 2019.11.24 |
---|---|
서류 한 장(피천득의 "은전 한 닢" 패러디) (0) | 2019.11.24 |
동아리 가입이 취업만큼 어렵다고? (0) | 2019.09.11 |
취업과 스펙 그리고 자격증 (0) | 2019.04.11 |
같은 수업 다른 반응 (0) | 2019.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