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동안 대학 교육과 관련한 큰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온라인 강의라 할 수 있다. 미국 일부 명문대학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KOCW와 K-MOOC이다. KOCW는 각 대학이 제공하는 강의동영상을 제공하고 있고, K-MOOC는 이에 더해 일반인도 강의관련 과제와 피드백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앞으로는 일부 명문대를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대학교육이 이런 온라인 방식으로 대체되어 대학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본 바로는 그건 불가능하다.
나는 2012년 2학기부터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의 학습동아리인 인큐믹스의 지도교수를 맡고 있다. 처음에 인큐믹스를 맡았을 당시, 학부내에 다른 학습동아리들을 살펴보면, 파이노믹스는 금융, 영웅회는 영어, CSI는 중국경제라는 활동의 주제라고 할 만한 키워드가 금방 떠올랐는데, 인큐믹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바로 "기업분석"이었다. 사실, 기업분석은 그 당시 SKY 대학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투자동아리들의 주된 활동이었고, 이들 투자동아리에서 훌륭한 기업분석보고서를 작성한 학생들은 관련 공모전을 통해 증권업계에 알려지면서 결국 유수의 증권사로 입사하게 되는 좋은 사례를 많이 남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걸 따라해보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기업분석을 할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SKY 대학의 투자동아리들은 모두 자생적으로 발전한 동아리들로, 명목상 지도교수가 있긴 해도 지도교수에게 의존하지 않고 대체로 학생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나가는 형태였다. 신입기수 모집도, 모집된 신입기수에 대한 교육도, 기업분석기법의 학습도, 기업분석보고서의 작성도 모두 학생들 스스로 연구하고 실행해나가는 형태였고, 지도교수는 그냥 가끔씩 조언하는 정도로 관여하는 형태였다. 인큐믹스 학생들도 지도교수가 활동을 제안하면 이렇게 스스로 해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큰 오산이었음을 한 학기만에 알게 되었다. 2013년 1학기 회장을 맡게된 정성진 학생(얼마전에 졸업해서 금복주에 입사했다.)이 2013년 1학기 초에 찾아와서 기업분석을 하는 방법을 특강형태로 가르쳐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다.
2013년 1학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머튼 모형을 이용한 기업분석에 대한 특강을 2시간에 걸쳐 진행하였는데, 내 기억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꾸벅꾸벅 졸았다. 김영하 학생(얼마전에 졸업해서 대구은행에 다닌다.) 정도가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는 등 꼭 알아듣고야 말겠다는 열정을 보였을 뿐이다. 다만, 이 학생들은 2013년 2학기에 내 강의 "금융시장과 투자분석"을 수강함으로써 결국에는 머튼 모형을 이용한 기업분석 방법을 제대로 습득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습득한 지식이 신입기수들에게 자연스럽게 전수될 수 있도록 나는 학생들이 기업분석 보고서를 작성할 때 기존기수와 신입기수가 함께 쓰도록 지도하였다.
나는 이것으로 기업분석 활동이 본 궤도에 오를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2013년에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하나씩 졸업해감에 따라 인큐믹스 학생들이 작성하는 보고서의 수준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인큐믹스 간부진들을 불러서 물어본 결과, 학생들이 내 수업을 수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존기수들로부터 기업분석 기법을 전수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이 많은(그래봐야 서너살 차이다.) 기존 기수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는 게 너무 어렵고 부담스럽다나? 불과 몇년 사이에 학생들이 이렇게 숫기가 없어졌나 싶었다. 서너살 많은 선배들, 그것도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선배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아버지뻘 되는 상사들과 어울려야 하는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싶었다. 내 수업을 듣지 않는 것은 금융권에 관심이 없어서라나?
그래서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2015년 겨울방학때 내 강의 녹화분(나는 내가 강의한 과목들을 KOCW에 공개해둔 상태이다. 이 블로그에도 그 영상들이 링크되어 있다.)을 이용해서 내 강의를 듣고, 2016년 1학기 초에 그 내용에 대해서 필기시험을 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4명이 인큐믹스를 탈퇴했다(나쁘다. 남아 있는 학생들은 그래서 대견하다.). 2016년 1학기에 실시한 첫 시험에서는 18명이 응시해서 총 6명이 0점을 맞았다. 성적우수자 5명은 앞으로 이 시험을 영구면제해주었다. 2016년 여름방학에도 같은 과제를 내서, 2016년 2학기 초에도 시험을 치렀는데, 영구면제자를 제외하고 응시한 18명(신입기수들이 들어왔다.) 중 11명이 0점을 기록했다. 이번에는 성적우수로 시험이 영구면제된 인원이 2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6년 2학기 현재 이들 인큐믹스 학생들이 나의 "금융시장과 투자분석"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느낀 것은, 온라인 강의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온라인 강의를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6년 1학기 시험에 비해 2016년 2학기 시험에서 더 많은 0점자가 발생한 이유는 "요약노트" 때문이라 생각한다. 처음 이 제도를 시행한 2016년 1학기에는 온라인 강의를 제대로 수강하지 않은 학생수가 비교적 적었던 반면, 2016년 2학기 시험에서는 2016년 2학기 인큐믹스 회장을 맡은 조재현 학생이 만든 요약노트(조재현 학생의 의도는 좋았다. 회원들을 자체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에 의지해서 온라인 강의를 듣지 않고 시험을 치른 학생이 늘어나서 0점자가 많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를 듣지 않을수만 있다면, 그 효과가 어떻든 편법을 동원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실, 대학별로 정규과목으로 개설되는 인터넷 강의들의 경우에도 이런 행태가 엿보인다. 학생들이 평소에 인터넷 강의를 안 듣고 미뤄두었다가 시험을 앞두고 한꺼번에 듣는 경우가 상당히 흔하다. 물론, 이런 행태로 인해 인터넷 강의에서 성적이 안 좋은 학생도 많다.
이는 결국 자율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프라인 강의의 경우,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나타나야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일정정도의 강제성이 가해지는 것이지만, 온라인 강의의 경우 시간과 장소를 스스로 정해야 하기 때문에 자율성이 강하지 않은 학생이라면 제대로 듣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해외의 온라인 강의서비스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K-MOOC의 원형인 해외 MOOC 서비스업체들의 통계를 보면, 처음 수강을 시작한 인원의 약 10% 내외만이 끝까지 해당과목을 수강한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비율은 내 경험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학생들을 상대하면서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길을 찾는 소위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한 자율적인 학생들은 전체 학생의 딱 10% 내외정도라고 느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고도의 자율성을 지닌 10%를 제외하면, 90%에 이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라인 강의를 통해 뭔가를 배우기가 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사교육에 익숙해져서 학생들의 자율성이 점점 낮아져간다면 더욱 MOOC류의 온라인 강의가 설 자리는 없어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현재와 같은 오프라인 강의가 대세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인큐믹스 지도교수로서 나는 계속 답답해하고 힘들어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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