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주식시황이 다음 해 경제상황을 미리 보여준다는 것은 학계와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실증적 사실(stylized fact) 중 하나다. 그래서 거시경제 전문가들도 연초에 신년 경제전망을 할 때 꼭 직전 연말 주식시황을 참고한다. 물론 이러한 관계가 100%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지 설명도 안된다. 통계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는 걸 현상으로 받아들일 뿐.

2024년 연말 KOSPI 지수를 보면 암울하다. 국내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주식 대신 미국 등 해외주식에 대한 투자를 점차 늘리고 있는 추세이고, 계엄/탄핵 정국에 외국인 투자자들도 우리나라 시장을 떠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도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전망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주식시황과 향후 경제상황의 실증적 관계만 보면 우리 경제도 계속 전망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포트폴리오 이론을 배운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투자가능한 자산의 수가 많을수록 투자자가 누릴 수 있는 분산투자의 효익은 더 커진다. 더 낮은 위험을 부담하고도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투자자의 효용도 더욱 증대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주식시장보다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행동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종목수가 훨씬 많으니까.

하지만, 국내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떠나가면 우리나라 증시는 침체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위의 실증관계에 의해 우리나라 경제도 호조를 보이기 어렵게 된다. 그렇다면 전업투자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우리나라 개인 투자자들의 경제상황도 좋아지기 어렵다. 취업이 더 어려워지거나 임금이 동결/삭감되거나 매출이 줄어들거나 등등의 형태로 말이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해외 주식으로 옮겨가는 건데 그게 부메랑처럼 본인의 경제상황을 나쁘게 할 수도 있으니까.

2025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주식시황과 경제상황 간의 이런 실증적 사실이 빗나가길 바란다. 주가는 오르고 경기는 살아나며 투자자들은 부자가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아직 우리에겐 방위산업과 조선산업이 있으니까. 우리는 13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의 후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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