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과 신청을 앞두고 전과를 해야 할지 혹은 어느 과로 전과할지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 내 경험에 바탕을 둔 100퍼센트 주관적인 의견을 적어본다. 참고로 나는 고대 경영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를 모두 받았고, 이 글은 학부 전공을 기준으로 쓰는 글임을 밝힌다.

1. 경제금융학 중 경제학: 사회과학의 여왕이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그것을 채워줄 자원은 한정되어 있어서 유한한 자원으로 무한한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최대한 채워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크게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으로 나눌 수 있다. 가계, 기업, 정부의 세 경제주체 중 가계와 기업이라는 개별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을 다루는 분야가 미시경제학이고 정부의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경제전체와 국가 간 경제문제를 다루는 분야가 거시경제학이다. 통계기법과 데이터를 이용해서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의 연구를 분석하고 뒷받침하는 분야가 계량경제학이다. 다양한 분야의 응용경제학은 이 세 분야의 응용이다. 특히 미시경제학의 응용인 경우가 많다. 경제현상을 주로 다루지만 법경제학, 결혼의 경제학, 행동경제학 등 따지고 보면 범위가 무지 넓고 다른 학문들과 융합된 경우도 많다. "경제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하는 질문에 유일하게 모든 경제학자가 동의하는 명제는 "경제학자가 연구하는 학문"일 정도로 다루는 범위가 넓다. 지리학과 융합된 경제지리학, 공학과 융합된 경제성공학, 사회학과 융합된 경제사회학 등 타 학문분야와도 잘 융합된다. 미시경제학의 핵심 중 하나인 게임이론은 군사학과 국제정치에서도 자주 쓰일 정도이다. 금융학/계량경영학/생산운영관리 등과 함께 문과에서 수학을 제일 많이 쓴다. 이건 그냥 수학이다 싶은 과목으로 경제금융수학, 수리경제학, 경제통계분석, 계량경제학 같은 과목이 있다. 반면에 경제사, 경제학설사 등 수학을 전혀 안 쓰는 과목도 꽤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학생들이 수학을 싫어해서 요즘은 국가를 막론하고 학부과정에서는 수학을 덜 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과목 특성상 조별과제는 없다. 혼자 공부해서 혼자 시험 치는 방식.

2. 경제금융학 중 금융학: 경제학의 아들(딸)이다. 돈의 미래(어디서 돈을 끌고 와서 어디에 얼마나 돈을 쓸 것이고 어떻게 불릴 것인가)를 다루는 학문이다. 크게 미시금융과 거시금융으로 나뉘며, 미시금융은 다시 기업금융과 투자론으로 나뉜다. 경영학의 재무/금융 내용은 미시금융에 해당한다. 경제금융학부에서는 미시금융뿐만 아니라 여기에 화폐금융론, 국제금융, 금융기관론 등 거시금융의 영역도 추가로 더 배우게 된다. 미시금융에서는 기업과 투자자 입장에서 돈을 어떻게 끌어와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를 다룬다. 거시금융에서는 정부와 금융기관의 돈 관련 문제와 국가 간 돈 문제를 다룬다. 금융학도 경제학의 한 분야인 만큼 경제금융학부에서 배우면 경제학과 더 유기적으로 엮어서 배울 수 있다. 경제학의 한 분야인 만큼 기본적으로 경제학과 같은 수학을 쓴다. 대학원 과정에 가면 일부 분야는 NASA에서 우주선 만들 때나 쓰는 초고난도 수학을 쓰기도 한다. 학부과정에서는 대체로 수학을 빼고 가르치려는 경향이 많다. 경제학을 모태로 하는 만큼 조별과제는 없다. 혼자 공부 혼자 시험.

3. 경영학: 경제 3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 중 기업의 활동을 주로 다룬다. 그런 의미에서 미시경제학의 한 분파인 기업경제학과 다루는 대상이 같다. 하지만 기업의 기능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 수학, 통계학, 산업공학 등 다양한 관련학문의 이론과 방법론을 끌고 와서 다룬다는 점이 기업경제학과 다르다. 방법론이 거의 일원화되어 있고 유기적으로 잘 조직화되어 있는 경제학과 다르게, 분야별로 성격이 전혀 다른 세부 분야가 모인 학문이다. 따라서 경제학과 달리 분야별로 소통이 잘 안 된다. 경제학이 단일민족 국가라면 경영학은 다민족 국가다. 공용어는 회계학이지만 대부분의 민족들은 공용어를 잘 못하는 다민족 국가랄까.

4. 경영학 중 재무/금융: 경제금융학의 미시금융 분야에 해당된다. 경영학과에서 재무/금융을 공부하더라도 조금 깊이 파고들면 결국 관련 경제학 과목을 듣게 된다. 문과에서는 경제학 및 아래에서 소개하는 계량경영학/생산운영관리와 더불어 수학을 가장 많이 쓰는 분야다. 조별과제 없이 혼자 공부 혼자 시험.

5. 경영학 중 회계/세무: 돈의 과거(어디에 얼마나 돈을 썼느냐)와 세금을 다루는 분야다. 여러분이 수포자라면 나는 회포자다. 차라리 우주선 만드는 초고난도 수학이 회계원리(회계학의 이해)보다 훨씬 쉽게 느껴질 정도다. 내 살다 살다 이렇게 나랑 안 맞는 분야는 처음이다. 회계/세무 전공 교수님들이 신(Jehovah, Allah, Buddha...)으로 보인다. 매우 훌륭하고 실용적인 학문이지만 적성에 안 맞으면 죽을 맛인 학문이다. 이공계 학생들이 문과 우습게 보고 수강했다가 피똥 싸는 분야다. 문과의 마지막 자존심? 참고로 이 분야에 등장하는 수학은 사칙연산이 99퍼센트다. 간혹 루트 정도 나올까... 혼자 공부 혼자 시험.

6. 경영학 중 계량경영학, 생산운영관리: 대체로 응용수학/응용통계 같은 느낌이다. 기업의 생산과정을 설계하거나 자동화하는 내용과 물류, 전자상거래, 인공지능(비즈니스 관련) 등을 다룬다.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코딩)을 꽤 한다. 공대에서 산업공학과 가면 배우는 게 바로 이 분야다. 물론 산업공학과 쪽이 더 자세히 배우긴 한다. 문과에서는 경제학, 재무/금융과 더불어 수학을 제일 많이 쓰는 분야다. 혼자 공부 혼자 시험.

7. 경영학 중 마케팅, 인사관리, 국제경영 등: 수학 싫어하는 경영학 전공자들이 주로 이 분야 과목들을 많이 듣는다. 수강신청 경쟁도 치열하고 인기폭발인 과목도 많다. 실제 사례가 많이 등장해서 수업이 매우 재밌다. 게다가 수학도 안 쓴다. 대신 조별과제가 많다. 조별과제에서 무임승차 빌런을 만나면 수명이 줄어드는 게 어떤 건지 느낄 수 있다. 근데 그런 빌런이 생각보다 엄청 흔하다. 매우 훌륭한 학문이지만, 이 분야의 과목들로만 몰아 듣고 졸업할 경우 취업문이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 있다. 기업에서는 이 분야를 소수정예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기업의 인력수요가 높지 않기 때문. 심리학, 사회학, 교육학, 정치학, 국제관계학 등의 이론과 방법이 이용된다. 따라서 이 분야들로만 학점을 채우면서 비상경계 문과학생들을 무시하는 건 후손이 잘난 척하면서 조상 욕하는 꼴이다. 비상경 문과 학생들과 차별화되는 취업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8. 회계세무학: 원래 경영학과에 속해 있던 전공인데 별개의 전공으로 독립했다. 학문 자체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수학자로서 복식부기를 창시한 루카 파치올리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경영학보다 더 오래된 학문이다. 경영학과에서 배우는 회계학 및 세무학보다 훨씬 자세하게 회계학과 세무학을 다룬다. 회계학은 돈의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세무학은 세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문과의 마지막 자존심! 혼자 공부 혼자 시험.

9. 무역학: 국제경영학, 국제경제학, 무역실무 이렇게 세 분야로 구성되어 무역을 경영학 관점에서, 경제학 관점에서, 실무 관점에서 다룬다. 경제학과 경영학의 중간성격이랄까? 과목별로 조별과제가 있을 수도 있다.

경제금융학부에서 경영학과로 전과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대게 수학이 싫어서 전과를 한다. 근데, 어차피 경영학과로 가도 수학은 만난다. 수학을 피할 경우, 조별과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수학을 피할 경우, 취업문이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도 있다. 내 의견일 뿐이니 참고만 하도록. 결국 인생은 본인 인생이니까 심사숙고해서 전과 잘하길 바란다.

PS1 - 수학을 안 하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전공은 의약계열 전공뿐이다. 나머지 전공들은 수학을 많이 쓰는 분야일수록 잘 먹고 잘 살 가능성이 대체로 높다. 의대가 인기 있는 이유가 다 있는 거다. 단, 순수수학이나 물리학은 미국이라면 몰라도 한국에서는 그다지 취업전망이 좋지 못하다. 이 전공 학생들은 영어 잘 배워서 미국취업 강추.

PS2 - 어차피 상경계열에서 전공 살려서 취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경계열 전공을 충실히 살려서 취업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이 시험을 통과해서 취업하는 경우나 특수한 산업에 국한된다.

(1) 공인회계사: 회계세무학 전부+재무/금융 전부+마케팅+인사관리+법학 일부. 시험.

(2) 세무사: 회계세무학 전부+경제학 중 재정학+법학 일부. 시험.

(3)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경제학 전부 혹은 경영학 전부. 전공필기시험.

(4) 기타 공기업: 경제학, 경영학, 법학, 행정학 중 일부. 전공필기시험.

(5) 행정고시: 경제학 전부+법학 일부. 필기시험.

(6) 금융권: 재무/금융 전부 혹은 일부. 입직 자체가 어렵지만 학교에서 배운 재무/금융 지식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은행은 간단한 필기시험도 있다.

(7) 관세사: 무역학. 이 시험은 내가 잘 모르겠다. 각자 찾아볼 것!

PS3 - 사기업은 상경계 우대일 뿐 상경계 필수가 아니며 그마저도 경력직 중고신입을 선호한다. 공대처럼 특정 전공만 뽑는 전공한정의 취업은 문과에는 없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 문과를 뽑던 직무에도 공대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일부 존재해서 문과생이 설 자리는 더 좁아졌다. 요새는 공대도 취업이 예전 같지 않아서 공대생의 문과직무 침공이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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