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메일 받다 보면 제대로 쓴 메일을 찾기가 어렵다. 엊그제 오랜만에 잘 쓴 메일을 받아서 해당 학생의 동의 하에 메일을 여기 공개한다.

내가 이 메일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메일 제목에 핵심 내용이 들어있다. 제목이 좀 긴 편이긴 하지만, 핵심을 제목으로 잘 표현했다.

2. 메일이 인사말로 시작한다. 사실, 요즘 학생들 메일 중에는 인사말도 건네지 않는 메일이 꽤 많다.

3. 인사말 다음에 본인의 신원을 명확히 밝힌다. 황당하겠지만 본인이 누구인지도 안 밝히는 메일도 꽤 있다. 받아보면 정말 황당하다.

4. 그다음에 바로 용건을 한 문장으로 명확히 밝힌다. 특히 과목명과 과목번호까지 밝힌 점 높이 평가한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무슨 과목에 관한 용건인지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딱 한 과목만 강의하는 것이면 모르겠지만, 여러 과목을 강의하는 입장에서 어느 과목에 대한 용건인지 밝히지 않는 메일을 받으면 황당하다. 그런 메일을 자꾸 받으면 화가 나기까지 한다.

5. 그리고 그 용건을 달성하기 위한 설득 작업이 훌륭하다. 특히, 본인의 경험과 과목에 대한 이해도를 드러내는 점이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이다. 설득하는 과정에서 내 과목에 대한 이해도를 나타냄으로써 용건의 진정성과 간절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마음이 움직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렇게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한 이해도를 메일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 왜? 모르니까. 조사해보지도 않으니까. 대개의 경우 그냥 학점 잘 받고 싶어서 내 과목을 들으려고 할 뿐 수업내용 자체에 대한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낮으니까.

6.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런 끝인사도 하지 않는 메일이 꽤 있다. 마지막에 "OOO 올림" 부분이 들어갔더라면 더 완벽했을 것이다.

이렇게 깔끔한 메일을 받고서 마음이 움직인 나는 부복수 여석 5석을 증원하였다. 기본적으로 다른 교수님께서 맡고 계신 타 분반에 대한 영향 등을 고려해서 증원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수강정정기간이 하루 남은 상황에서 타 분반에 부복수 수강생이 전혀 없어서 내 분반 증원이 타 분반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고, 위 메일이 내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듯이, 잘 쓴 메일 한통은 웬만해선 해주지 않는 증원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 다들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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