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고등학교 때의 1타 강사 강의와 대학 강의를 비교하면서 불만을 늘어놓곤 한다. 고등학교 문제집과 대학 교재를 비교하면서 불평하기도 한다. 에브리타임에 교수와 교재에 대한 온갖 악평을 쏟아놓는다. 특히 학점이 나쁠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 대학과 교수와 교재가 개선되기만을 바랄 뿐,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매우 수동적인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앱을 열어보면 "전문가 모드"라는 게 있다. 전문가처럼 카메라 설정을 일일이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모드이다. 일반적인 카메라 앱의 모드가 "자동 카메라"라면 전문가 모드는 "수동 카메라"인 셈이다.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수동 카메라"를 다루는 느낌이다. 하나하나 일일이 다 지정해주고 가르쳐야 한다. 자율성은 찾기 힘들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더욱 그렇다.

예전에 대학에 입학했던 학생들은 그나마 자동 카메라 상태로 입학했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자동 카메라 상태로 졸업을 해도 그 자동 카메라를 눌러주는 누군가가 있었던 시대를 살았었다. 기업에 공채로 입사하면 신입사원 교육을 통해 회사는 회사가 원하는 상태로 자동 카메라를 셋팅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카메라 셧터를 누르는 것은 회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회사가 AI 카메라를 원한다. 셧터마저도 스스로 알아서 작동해서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이벤트를 알아서 최적으로 찍는 AI 카메라를 말이다. 기업의 채용에서 공채가 사라져 가고 경력직 신입을 선호하는 풍조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발생하는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오히려 수동 카메라 상태다. 수동 카메라로 입학해서 AI 카메라로 졸업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대학생들을 보면서 교수로서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공자(孔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엮은 <논어(論語)>에는 "학이시습지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不亦說乎兒)"라는 말이 등장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바로 "학습()"이다. 習에서 學은 새로운 것을 탐구해서 알게 된다는 의미이고 習은 그렇게 알게 된 지식에 익숙해진다는 의미이다.

習이라는 말은 지식체계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특정 학문분야 차원에서든 개인 차원에서든 먼저 學이 이루어진다. 여러 가지 자료와 증거를 탐구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거나, 책을 읽어서 새로운 지식을 얻거나, 혹은 강의를 들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 과정이 바로 學이다.

이러한 學의 과정이 이루어져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면, 이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習이다. 이는 이러한 새로운 지식을 실제로 적용해보거나 응용해보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실제 사례를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관련되는 문제를 다양하게 만들어보거나 풀어보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 지식을 남들한테 반복해서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서 習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일단 習의 과정이 무르익으면, 그 지식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게 되는 學의 과정이 다시 일어나게 된다. 이렇듯, 모든 지식체계는 學과 習의 과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모든 교육과정은 習의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과목이든 교과서를 펼쳐보면 기본적인 이론이나 내용을 서술하는 부분과 이를 이용해서 문제를 풀거나 토론을 하도록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이론이나 내용을 서술하는 부분이 學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문제를 풀거나 토론을 하도록 하는 부분이 習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문제는 교육의 내용이 더욱 고도화될수록 學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정된 시간에 다루어야 할 學의 비중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習의 비중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수학을 보면, 사칙연산과 분수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6년에 걸쳐서 아주 조금씩 배운다. 그리고 조금씩 배울 때마다 그 계산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문제풀이와 응용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문제집도 많고 학습지도 매우 다양하다. 그 결과, 學에 비해 習의 비중이 매우 높다. 다만, 근본적으로 學 자체가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에 그 문제의 다양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비슷한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형태로 習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고등학교 수학은 배우는 내용이 초등학교 수학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초등학교 때 배운 내용 정도는 고등학교 수학 기준으로는 단 몇시간 분량에 불과하다. 문제집이 매우 다양하고 문제집 별로 개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도 다양하다. 기본적인 學의 양이 초등학교 과정에 비해 많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여전히 習의 비중이 높긴 하지만 초등학교 과정에 비하면 學의 비중이 엄청나게 늘어난 셈이다.

반면, 대학 과정에서는 문제집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국가고시나 자격증 시험에 수험과목으로 들어간 과목에만 문제집에 해당하는 수험서들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이 수험서들도 그 종류가 적을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문제집들에 비해서는 매우 불친절하고 문제도 다양하지 못하다. 심지어 대부분의 대학교재에는 각 장마다 연습문제의 수도 많지 않을 뿐더러 그 연습문제에 대한 해답집도 존재하지 않는다. 學의 비중이 극단적으로 높아지면서 習의 비중이 극단적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공인회계사 시험 수험서들과 수능 문제집들을 비교해보자. 대체로 공인회계사 시험 수험서들을 보면 수능 문제집들에 비해 매우 불친절하다. 일단 난이도 별로 차근차근 문제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기본이론을 배우고 나서 아주 간단한 예제 정도 풀고 나면 연습문제에서는 갑자기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기본이론 배운 걸로 도대체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라는 것인지 막막하기까지 하다.

이는 공인회계사 시험의 기본이론이 양적으로 수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인회계사 수험서들을 쌓으면 사람의 키를 가볍게 넘어선다. 지금의 이러한 수험서들을 공부하는 데에도 평균 4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수능 문제집 수준으로 난이도별로 세분화된 문제들을 단계적으로 제시하다보면 수험기간이 10년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수능 1타 강사와 회계사 1타 강사를 비교해봐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공인회계사 수험생들이 수험생활을 하면서 수능 따위 우습게 느껴진다는 게 바로 이런 것 때문일 것이다.

2022년 공인회계사시험 수석 합격자 조길환씨가 공부한 책들. 출처 : 법률저널(http://www.lec.co.kr). 사진을 클릭하면 기사원문을 볼 수 있다.
영남대학교 상경관 앞에 걸린 플래카드. 합격년도와 합격생들의 학번에 주목하면 얼마나 많은 학습 시간이 필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대학원 과정은 더욱 심각해서 교재가 존재하는 과목이 아예 손에 꼽힐 정도다. 그마저도 전부 영어로 된 것들 뿐이다. 그리고 그 교재란 것들도 연습문제 따위는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의 경우, 대학원 과정의 수업은 영어로 된 논문들을 이용해서 이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대학원 과정을 벗어나서 전문 학자의 단계에 이르면 그 분야의 모든 책과 모든 논문과 모든 자료가 탐구의 대상이 된다. 당연히 연습문제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한두 권의 교재로 필요한 지식을 다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다루는 지식의 양이 방대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 지식이 고도화될수록 學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공식적인 교육과정이라면 한정된 시간과 자원으로 學을 다루기도 벅차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習의 비중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경우에 習은 각 개인의 몫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강생 절반이 1학년, 나머지 절반이 2~4학년인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의 <경제금융수학> 과목에서 1학년들이 일방적으로 하위권이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1학년 학생들에 비해 2~4학년 학생들이 이러한 점을 더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1학년 학생들에 비해 2~4학년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더 능동적으로 習에 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고등학교에서 3년간 배웠던 수학은 대학에 오면 <기초수학>이나 <미적분학> 등 두세 과목으로 모두 커버된다. 고등학생이 초등학교 수학을 보면 한 줌의 지식으로 보이듯이, 대학생이 볼 때 고등학교 수학도 한 줌의 지식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대학생이 된 이상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대학 과정에서 그 비중이 줄어든 習을 스스로 보충하는 수밖에 뽀족한 방법이 없다.

이에 대해서 대학이나 교수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는가? 있다. 바로 과제를 많이 내는 것이다. 정규 수업에서는 學의 비중이 너무 높아서 도저히 習의 기회를 부여할 수 없으니 수업이 끝나고 나서 習을 강제하는 것이 바로 과제다. 미국 대학의 경우에는 실제로 과제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과목 당 과제를 통해 읽어야 할 자료의 양이 평균 1,000페이지 내외라 할 정도다. 6과목이면 6,000페이지를 한 학기 과제를 위해 읽어야 한다는 소리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이놈의 과제라는 걸 극도로 혐오한다. 우선, 과제를 많이 내어주는 강의는 강의평가부터 좋지 않다. 심지어 수강생수가 매년 줄어서 폐강위기에 몰리기도 한다. 나도 그런 꼴을 여러 번 당하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과제를 내지 않게 된 것이다.

아니면 졸업에 필요한 학점의 수를 120학점에서 200학점 즈음으로 늘리는 방법도 있다. 각 과목별로 習을 전문으로 하는 "연습" 과목을 추가로 개설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공계 전공에서는 1학년 과정에 이런 과목들이 있다. <미적분학>이라는 3학점 짜리 과목이 있다면 그에 대응하는 <미적분학 연습>이라는 1~2학점 짜리 과목을 추가로 개설하는 식이다. 과제도 싫어하는 학생들이 이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방법은 학생 스스로 習을 보충하는 것밖에 없는 것 아닌가?

언제까지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고등학교 때까지의 타성에 젖어 수동 카메라로 남아 있으려고 하는가? 대학생이 된 이상 스스로 習의 과정을 보충해서 AI 카메라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졸업하고 나서 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우선 이번 학기 <경제금융수학> 과목에서 예전과는 달라진 1학년들의 대반란을 보고 싶다. 그래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희망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PS - <경제금융수학>에서 1학년들을 양민학살하고 싶어하는 2~4학년 학생들은 이 글을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1학년들 각성할까봐.

PS - 예전에 신입생들을 위해 공부법에 관한 이런 글도 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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