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2000년생 밀레니엄 베이비들이 대학에 들어온다. 발랄하기만 하던 90년대 후반생들도 이제 캠퍼스의 할배, 할매, 혹은 화석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신입생 OT를 필두로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새내기들을 모아놓고서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는 선배들이 눈에 띈다. 새내기들은 그 선배가 마치 신이라도 되는듯 우러러본다. 그래봤자 몇살 차이도 안날텐데 말이다. 가까이 가서 들어보면 참 어이 없어서 민망한 대화도 많다. 4학년 쯤 되어서 둘이 다시 만나면 서로 민망해서 어떻게 쳐다볼라고...

문제는 저렇게 폼을 잡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는 거다. 새내기 10명을 3월 한달 동안 일주일에 두번씩 밥을 사준다고 가정하고 1인당 평균 5,000원짜리 밥을 사먹인다 치면 대략 40만원이 밥 값으로 나간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사먹이면 아무리 싼 걸 사먹여도 1인당 2,000원에 한달 16만원. 총 56만원! 평소 쓰는 생활비 플러스 56만원이다! 좀 더 비싼 거 먹이거나 더 많은 후배들한테 밥을 사주거나 더 자주 밥을 사주면 금세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이 비용을 충당하려고 막노동을 하기도 한다니, 똥폼의 댓가는 휘어지는 등골이랄까? 이 글을 읽는 새내기들은 이런 사실을 좀 알기 바란다.

그리고 선배랍시고 폼 잡는 학생들 대부분은 끽해야 2학년이다. 신입생들보다 살아봐야 1년 더 살았고 경험해봐야 1년 더 해봤을 뿐이다. 따라서 이 친구들이 해주는 조언이 쓸모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공부는 군대 갔다와서부터라는둥, 학점관리가 어떻고, 꿀강이 어떻고, 취업이 어떻고 폼 잡아봐야 아직 제대로 겪어보지도 못했고, 그러한 행동의 결과도 아직 모른다. 군대? 아직 안 갔다왔다. 취업? 아직 취업준비 시작도 안했다. 그래서 취업을 위해서 학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른다. 군대 가기전에 말아먹은 학점을 복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른다.

또, 그런 선배들 주머니 사정이라고 해봐야 용돈+알바비가 전부다. 신입생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신입생들은 너무 얻어먹으려 하지 말자. 최소한 밥 사주면 고마워하기라도 하자. 선배가 밥을 사줘야 하는 의무 따위는 없다. 호의를 의무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걸 겪은 2학년 이상의 학생들도 본인의 고생을 잊고 또 비슷한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시간강사 선생님들께 밥을 사달라고 하는 만행... 올해부터 강사법이 시행되어서 상황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대개 시간강의료는 3학점 짜리 1과목에 1달에 50만원 내외의 강의료가 책정된다. 그런 강사선생님들께 밥 사달라고 한 20명이 들러붙으면 1인당 5,000원씩만 해도 10만원이 지출된다! 차라리 벼룩의 간을 내어먹지... 제발 이러지 말자. 도대체 무슨 권리로 시간강사 선생님들께 밥을 사달라고 하는가? 만약 여러분이 월급을 받았는데 회사 사장님이 한턱 내라면서 월급의 20퍼센트를 회식비로 각출하면 가만히 있겠는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리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전에, 근본적으로 그런 행동은 청탁금지법, 소위 김영란법에 저촉되는 행동이다. 사제지간에 커피 1캔도 주고받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 밥을 사달라고 조르다니? 그것도 단체로.

밥을 같이 먹어야만 친해지고 정보가 교환되는 건 아니다. 그냥 선배나 교수님께 상담을 요청해도 되고, 꼭 같이 밥을 먹어야 하면 더치페이를 해도 된다. 한번 선배가 사면 다음번엔 후배가 사던지. 제발 상대방의 등골 건강만은 지켜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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