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황당한 경우를 겪어서 여기 적어본다.

1학년 여학생이 "대학생활설계" 과목에서 지도교수랑 상담하라 했다고 메일로 나한테 상담요청을 했다. 그래서 일정을 정해서 그날 그 시간에 오라고 답장을 했더니 날짜와 시간을 변경해달라고 다시 메일이 왔다. 이유는 그날이 화요일이지만 수업이 없는 날이란다. 그래서 학교 안 가는 날이란다. 첫번째로 황당함을 느낀 대목이다. 그 시간에 수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본인이 학교 안 가는 요일(무려 화요일, 평일이다)이어서 안된다니...

그러면서 본인 학교 가는 요일에 공강시간을 주욱 적어보냈다. 이 시간중에 상담하고 싶단다. 이건 또 뭔가 싶다. 상담이 필요한 건 학생 본인이고 나는 내 시간을 할애해주는 건데 왜 내가 학생 일정에 다 맞춰야 하나? 나는 상담을 안해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쉬운 건 학생 본인이다. 그럼 당연히 내 일정에 본인이 맞추는 게 상식 아닌가?

그리고 실제로 그 학생의 공강시간이란 게 내 일정에 하나도 맞지 않는다. 그래서 그 시간엔 내가 다른 일정이 있어서 안된다고 상담이 어렵겠다고 짧게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사실 학교 안 가는 날 하루종일 "알바"를 해서 그렇다면서 본인 수업 끝나고 상담하면 안되겠냐고 본인이 수업 끝나는 시간을 주욱 적어보냈다. 본인이 지금 뭘 잘못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그 시간도 모두 내 일정과는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빈정이 상한 상태라 별도로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랬더니 전화로 상담하자는 메일이 왔다. 헛웃음이 나온다. 전화로라도 상담해주고 싶지 않다. 상담이 필요한 건 학생 본인인데, 본인은 조금도 양보하거나 희생하지 않으면서 자기 편의는 다 봐달라는 꼴 아닌가? 내가 이런 학생을 위해서 왜 나의 귀중한 시간을 전화로라도 내어주어야 하는가? 어이가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계가 곤란할 정도로 아르바이트가 중요하다면 그런 내용을 나한테 잘 납득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메일에서 찾아볼 수 없다.

어째서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학교 안가는 날이어서, 그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서 상담을 받을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째서 본인 공강 시간에 혹은 본인 수업 마치는 시간에 상담을 하고 싶다고 저렇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교수에 대한 존경심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나 예의 따위도 바라지 않는다.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상식 수준에서 봐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친구한테 급하게 책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서 친구한테 전화해서 책이 급하게 필요하다면서 본인 일정에 맞춰서 친구한테 책 좀 가져다 달라고 요구하면 친구가 순순히 갖다줄까? 책이 급하게 필요한 본인이 친구 일정에 맞춰서 직접 책을 빌리러 가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마인드를 갖고 있길래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메일을 보내는 건지 모르겠다. 그것도 지도교수한테. 세상이 전부 본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걸까? 모두들 본인한테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20년동안 저런 마인드로 어떻게 살아온 것인가? 부모님, 선생님들, 친구들은 지금까지 저런 행동을 다 받아준 것인가? 아무리 1학년이라지만 너무 심하다 싶다. 요즘 1학년들 다 이런 건 아니겠지?

PS - 이래 놓고 에브리타임에 교수가 메일 "읽씹" 한다고 욕하거나 상담요청해도 안받아준다고 욕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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