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북 시험에서는 배운 내용을 외워서 적는 게 무의미하다. 배운 내용이 고스란히 책에 적혀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배운 걸 그대로 책에서 찾아서 옮겨적는 문제는 오픈북 시험에 잘 나오지 않는다. 0점 방지문제라면 몰라도. 대신, 배운 내용을 응용하는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오픈북 시험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 입장에서는 책을 보면서 시험을 치니까 뭔가 시험이 만만한가보다. 오픈북 시험이니까 배운 내용을 책 보고 옮겨적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대충한다. 막상 시험지를 받아보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없어서 당황스럽다. 아니, 심지어 단순히 책에 있는 내용을 옮겨적으라는 문제를 내도 그 내용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틀린다. 워낙 공부를 대충해서...
오픈북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책 없이도 시험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 배운 내용을 그정도로 잘 이해하고 있어야 시험을 보면서 응용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긴장해서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잠깐씩 책을 펼쳐서 기억을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책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어야 할 때 그 내용이 책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수업들은 대개 오픈북 시험으로 평가한다. 학생들의 암기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또, 암기력이 아니라 이해도와 응용력을 평가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내가 평가하고 싶은 학생들의 능력은 잘 평가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큰 좌절감이 몰려왔지만, 이젠 좌절감에 면역력이 생길 정도로 무뎌져 버렸다. 이번 학기에는 이러한 좌절감 대신 오픈북 시험 본연의 대견함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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