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학기에 갑작스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동영상을 통한 강의를 진행하다보니 학생들도 나도 서로 얼굴을 못보고 한 학기를 보내게 되었다. 학생들도 그게 아쉬웠는지 작년 1학기가 끝나고 동영상 강의에 교수 얼굴이 꼭 나오도록 해달라고 대학본부에 요청하였다. 그래서 작년 2학기부터는 모든 동영상 강의에 교수의 얼굴이 나오도록 촬영하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강의에 내 얼굴이 나오는 게 참 불편했다. 아니, 강의자료 잘 보이고 음성 또렷하게 잘 전달되면 되지 꼭 교수 얼굴이 나와야 하나 싶었다. 특히 온라인에 판서를 많이 했던 작년 2학기에는 내 얼굴이 판서를 가리거나 방해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 불만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얼굴이 나오다 보면 촬영할 때 최소한 세수(ㅎㅎㅎ)는 해야 한다는 귀찮음도 컸다. 아이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들이 깨어 있는 낮시간보다는 아이들이 잠든 밤시간에 주로 촬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하루 종일 육아로 찌든 몰골로 촬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얼굴을 영상에 담으라니... 당연히 촬영을 위해 단장을 해야 하는 귀찮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강의중에 이런 문제를 자꾸 불평하게 되었고, 에브리타임의 별점 테러리스트들한테는 테러의 빌미를 제공하고야 말았다.

고백하건데, 이번 학기에 학생들에게 셀카 동영상을 찍어서 업로드하는 과제를 낸 동기 중에는 니들도 이런 불편을 좀 겪어보라는 심보도 자리잡고 있다. ㅎㅎㅎ 지금 진행중인 과제 1은 1분이상의 자기소개 동영상을 찍어서 업로드하는 과제다. 1080p, 30fps로 찍되, 1분간 본인의 마스크 안 낀 얼굴이 계속 잘 나와야 하고, 자기소개와 관련이 없는 얘기를 할 경우 점수가 부여되지 않는다. 업로드 하면 5점, 안 하면 0점, 그 중간은 없다. 중간고사 이후에 진행할 과제 2도 같은 포맷으로, 본인의 고민이나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1분 이상 말하는 동영상을 올리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제를 낸 가장 큰 동기는 작년 1년간이나 못본 학생들 얼굴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내 얼굴을 보는데 나는 학생들 얼굴을 못 봤으니까. 출석부에 사진이 있지 않느냐고? 그 사진을 봐서 실물을 짐작할 수 있을까? 과거 10년의 경험으로 볼 때, 출석부에 붙어 있는 사진은 전혀 실물과 다르다. ㅎㅎㅎ 그렇게 치면, 학생들은 교수의 얼굴 영상을 왜 보고 싶어 하는가? 학교 홈페이지에 교수 사진이 걸려 있는데.

또 다른 동기는, 학생들에게 좀 더 간편한 과제를 내주기 위함이다. 학생들은 과제를 상당히 부담스러워 한다. 학생들 부담을 덜어주려고 1페이지 짜리 써서 제출하는 과제를 내도 힘들어하고 본인 이름으로 3행시 짓는 과제를 내줘도 매우매우 힘들어한 학생들의 모습을 토대로 이러한 과제를 낸 것이다. 그냥 스마트폰 켜서 본인 얼굴 나오게 1분 이상 찍으면서 자기소개를 하면 되니 얼마나 간편한가?


그런데 이게 생각지도 못한 부수효과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과제 좀 쉽게 넘기라고 내준 건데 여기에 온갖 정성을 다 쏟는 학생들이 있다. 참으로 놀랍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특히 남학생들)은 그냥 최소한의 조건에만 맞는 영상을 찍어서 올린다. 시간도 딱 1분을 갓 넘기는 정도로 해서. 시간을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 그런데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본인의 영상제작실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본인이 가진 역량을 다 동원해서 멋진 동영상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화려한 자막, 보충설명을 위한 그래픽, 멋진 배경음악, 절묘한 편집. ㅎㅎㅎ 그냥 입이 떡 벌어진다. 늦게 내는 학생일수록 점점 더 퀄리티가 좋은 것 같다.

그냥 최소한의 조건만 맞추면 5점 받는 건데도 이렇게 고퀄리티로 제작을 하는 건 무슨 심리일까? 대부분의 학생들은(약 90%) 상당히 수동적이어서 시키는 것만 마지 못해서 최소한도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온 나로서는 이런 뜻밖의 상황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멋진 동영상들이 올라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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