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시간표를 짤 때 가장 우선 고려하는 건 물론 꿀강(A+ 폭격기 겸 과제 등 수업부담 적은 강의) 여부다. 꿀강이라고 소문난 과목이면 항상 시간표 작성 기준상 우선순위를 점하게 된다. 그 다음 기준이 아마도 최대한 학교 적게 가고(인강이 인기 폭발인 이유가 이거다.) 중간에 공강이 없도록 짜는 것일 것이다. 뭐, 나도 학생때 그랬다.

동일교수의 동일과목(물론 꿀강이다)에 대한 분반이 여러 개 있을 경우, 선택기준은 이렇게 변형될 것이다. 첫째, 어느 분반을 들으면 좀 더 나은 학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둘째, 어느 분반을 들으면 시간적으로 좀 더 환상적인 시간표를 짤 수 있을 것인가?

학생들은 대체로 첫번째 기준에는 무관심한 것 같다. 사실,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은 첫번째 기준을 무시해도 된다. 이들은 경쟁상대가 누구든 아무 관계가 없다. 누구든 이길 수 있으니까.

문제는 이 친구들이 대체로 수강신청할 때 훨씬 민첩한 편이라는 것이다. 내 경험상 대체로 수강신청할 때의 열의는 학점에 비례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대체로 동일한 강의에 대해 동일 교수의 여러 분반이 있는 경우, 학생들이 원하는 시간대의 수업에는 학점 킬러들이 포진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어느 분반을 들어도 최하위권이라 스스로 자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첫번째 기준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이들은 그냥 두번째 기준에 의해서 수강신청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수강신청 경쟁 자체에도 열의가 적기 때문에 결국은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시간대의 분반을 신청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볼 때, 중하위권 학생들 입장에서는 두번째 기준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수강신청 전쟁에서 승자가 되더라도 공부 잘 하는 학생들과의 학점경쟁에서는 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게다가 선호되지 않는 분반에는 최하위권 학생들이 몰려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실제로, 이번 학기(2018년 2학기) 내 수업을 보면 이런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동일과목의 A반은 수금 1시 30분, B반은 수금 3시, C반은 화요일 저녁 7시 40분이다. 당연히 A반이 B반보다 시간표상 선호되는 반이다. 금요일 오후 4시 15분까지 학교에 있고 싶어하진 않을 테니까. 마찬가지 논리로 C반이 가장 선호도가 낮은 반이다. 그러다보니 가장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 눈치 보지 않고 A반에 가장 많이 모였다. 그 다음이 B반, 그 다음이 C반인듯 싶다. 평균점수도 학점별 등급컷도 A, B, C반 순서로 5~10점씩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본인이 중하위권이라면, 그래서 학점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면, 남들이 꺼려할 시간대의 분반에 수강신청을 하면 좋은 학점을 받기 유리해진다는 결론이다! 물론, 학점 킬러들 중에 일부가 개인사정 등으로 야간수업 등 선호되지 않는 수업에 수강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1학기처럼. 아주 드물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성적공동균형평가"를 하지 않는다. 세 반을 모두 통합해서 "성적공동균형평가"를 하는 것이야 말로 불공정하다. 왜냐하면 공동평가를 하면 좋은 시간대(A반)를 선택한 학생들은 시간적인 우위도 누리고 학점면에서도 반별로 따로 평가하는 경우보다 더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야간수업(C반)을 선택한 학생들은 시간적으로 불리할 뿐만 아니라, 이 경우 반별로 평가할 때보다 성적이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즉, 반별로 따로 평가해야 시간적 혜택을 누리는 A반은 성적면에서 불리해지고 시간적 불리함을 겪는 C반은 성적면에서 혜택을 누리게 되므로 공정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 학기에도 반별 평가를 고수할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선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글을 읽고 나서도 과연 공강 없고 학교 가는 날이 적은 환상의 시간표를 선호할 것인가? 다음 학기, 이 글을 읽은 학생들은 과연 수강신청할 때 첫번째 기준과 두번째 기준 중에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 다음 학기가 벌써 기대된다.

PS - 기업별(주로 공기업) 지역인재 할당제도에도 이런 논리와 비슷한 논리가 적용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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